책 소개
“일등이 아니어도, 일류대가 아니어도
우리가 쳐 올린 공에 파울볼은 없다!”
『파울볼은 없다』는 정해진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경기장으로 나아가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시집이다. 일상의 사소한 경험에서 ‘세상’을 발견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규칙을 비틀어 자기만의 지침을 찾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당차다. 시인은 늘 정해진 틀에 맞춰 공부하고, 바쁘게 움직이기를 강요받는 아이들을 불러 세운다. 그리고는 ‘너희들’이 아니라 ‘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너’를 들여다본다. 61편의 시를 읽는 동안 열매 안 가득 꽃이 피는 무화과처럼 자기만의 화원을 가꾸는 중인 청소년들의 색깔 있는 성장을 만날 수 있다. 이장근 시인의 『파울볼은 없다』는 ‘창비청소년시선’ 여섯 번째 권이다.
문제의 나라, 철들지 않는 학교를 향해 쏘아 올린
이장근 시인의 통쾌한 시편들!
『파울볼은 없다』에는 ‘밤낮없이 공부해서 일류대에 가는’ 대신 내가 만든 더 넓은 야구장을 향해 달려 나가는 청소년이 있다.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힘차게 꿈틀대’며 자신에게 한 발 더 다가서는 청소년이 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길을 잃은 아이 혹은 ‘문제아’라 여기지만 이 시집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오히려 되묻는다. “나의 문제는//문제의/문제에 의한/문제를 위한//문제를 풀어야 하는 나라에 태어난 것”(「문제아」, 10쪽) 아니냐고.
1~4부에 수록된 61편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과 쉽게 지나치기 쉬운 세상을 찬찬히 살피고 들여다보는 청소년들이다. 시소와 미끄럼틀, 빨대, 소변기에 떨어진 동전 등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본다. 무거운 쪽으로 기우는 것이 당연한 시소에서 누군가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내려와야 하는 범상치 않은 진실을 쥔다. 그렇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법칙들을 뒤집어 본다. 직접적인 감정을 표현하거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대신 딱 반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만큼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는 동안 ‘너’와 ‘나’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될 것이다.
“부모님은 나만 보면 혀를 차지만
나는 혀 차는 소리를 박수 소리로 듣기로 했다”
한 친구는 작곡가가 되고 싶고, 한 친구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 꿈이 다른데도 두 친구는 한 교실에 갇혀 같은 교과서로 배우고, 같은 시험을 본다. 두 친구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눈이 마주쳤고, 약속이나 한 듯 책가방을 싸 거리로 나선다. 우리만의 첫 ‘야간자율학습’을 시작한 청소년들은 부모님들의 혀 차는 소리를 박수 소리로 여기며 자기만의 꿈을 챙긴다. 어른들이 만든 울타리를 넘어 경기장을 넓힌다. 울타리를 넘어 넓은 세상을 바라본 순간 일등이 아니어도, 일류대가 아니어도 내가 쳐 올린 공은 파울볼이 아니라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이 된다.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함께 창밖을 보다가
약속이나 한 듯 책가방을 쌌다
거리를 배회하며 나눈 이야기
너는 수의사가 꿈이라 했다
나는 작곡가가 꿈이라 했다
꿈이 다른데 같은 시험을 본다며
우린 거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먼지 같은 모순을 털어 냈다
우리의 첫 야간자율학습이었다
― 「야간자율학습」 부분(45쪽)
형은 밤낮없이 공부해서
일류대에 간단다
나는 밤낮없이 알바해서
내 가게를 차릴 거다
부모님은 나만 보면 혀를 차지만
나는 혀 차는 소리를
박수 소리로 듣기로 했다
내가 쓰는 야구장이
더 넓을 뿐이라고
― 「파울볼은 없다」 전문(52쪽)
자주 길을 잃는 시인 이장근이 아이들에게 내미는 시 나침반
“너희들이 아니라 ‘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너’를 알아볼 시간이야.”
이장근 시인은 청소년 시절 길을 자주 잃었고, 길을 잃을 줄 알면서도 모르는 길에 이끌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정신없이 앞으로만 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손 흔들며 불러 세우고 싶다. 이 시집에 실린 시 한 편, 한 편은 그렇게 불러 세운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이다. 그 작은 손짓에 돌아선 아이들이 혼자서 몰래 가꾸던 화원을 살짝 보여 준다. 얇은 껍질 안 가득 꽃을 피운 무화과처럼, 조급하고 성급한 어른들에게는 속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학교에서 이장근 시인을 만나 교사와 학생으로 연을 맺었던 청소년들이 모여 나눈 시 이야기를 책 뒤에 「청소년 좌담」으로 담았다. 중학생, 고등학생, 취업 준비생인 세 사람은 나이는 다르지만 시를 만나는 마음이 같았다. 이 시집을 먼저 읽은 청소년들은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공감도 많이 가”는 청소년시를 읽으며 “시의 문턱이 조금 낮아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외로움을 달래 주는 시, 힘들 때 잡아 주는 시를 가까이 두고 싶은 청소년들이 말한다. “부모님의 만족을 위해서 제 인생이 망가지는 건 싫어요!”
무화과를 먹었어.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이래. 못생겼는데 맛은 좋아. 꽃을 피우지 않고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 백과사전을 찾아봤지. 꽃이 과일 속으로 피어 보이지 않을 뿐이래. 무화과 속이 꽃밭이었던 셈이지. 너도 그런 거지? 무뚝뚝한 너의 얼굴. 하얀 이 드러내며 피던 웃음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살짝 건들기만 해도 터질 것 같아서 아는 척도 못하겠어. 아는 척보다 힘든 게 모르는 척이지만, 믿고 기다리기로 했어. 넌 너의 화원을 가꾸는 중이라고.
― 「비밀의 화원」 전문(48쪽)
“무화과는 꽃이 없는 과일이 아니라 꽃이 과일 속에 피었을 뿐이라는 발견이 좋았어요.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직 보여 주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 저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들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에 남았어요.”
― ‘청소년 좌담’에서(101쪽)
▶ ‘창비청소년시선’ 소개
‘창비청소년시선’은 전문 시인이 쓴 청소년시를 발굴하고 정선해 내는 본격 청소년시 시리즈이다. 이장근 시집 『파울볼은 없다』까지 총 6권의 ‘창비청소년시선’이 나왔다. 앞으로도 ‘창비청소년시선’은 청소년시의 다양한 폭과 깊이를 가늠하며 청소년들 곁을 지킬 조금은 위태롭고 조금은 삐딱한 노래들을 찾아 나갈 것이다.
▶ 추천사
조금 순수하다고 할까? 보통 시라고 하면 독자나 쓰는 사람이나 뭔가 대단한 깨달음이 있고 그것이 시화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알게 모르게 가지는 것 같거든요.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은 그런 것 없이 아주 작은 영감이라도 그걸 살려서 순수하게 표현한 게 좋았어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부담 없고 산뜻하고 공감도 가고. 시의 문턱이 조금 낮아지는 기분이었어요.
―「청소년 좌담」에서
차례를 펼쳐 ‘문제아’부터 ‘먼 길’까지 소리 내어 읽어 나갑니다. 이 제목은 어떤 시를 숨기고 있을까 상상하면서요. 복면을 벗기자 반전이 기다립니다. 우리 생각을 보기 좋게 뒤집습니다. 시를 읽는 일은 시인이 마음을 다해 만들어 입힌 복면을 한 행 한 행 벗기는 일입니다. 고요한 파장, 때론 폭풍 같은 파도. 우리는 박수를 보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장근 시인이 지은 시의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61곡을 준비한 시인이 마이크를 잡고 조명 아래 서 있네요. 당신이 ‘큐’ 사인을 보내 주기를 바라면서요!
―김미희(시인)
▶ 저자 소개
이장근
자주 길을 잃는 아이였다. 방향 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였겠지만, 잃을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길로 가 보고 싶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 아는 길에서는 번번이 나를 잃었고, 모르는 길로 가면 잃었던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했다.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갔고, 삼수를 해서 교사가 되었다. 지금도 자주 길을 잃는다. 그래서 길 잃은 아이들에게 눈길이 간다. 시는 내가 품고 다니는 나침반이다.
200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2010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받으며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 『꿘투』, 청소년시집 『악어에게 물린 날』, 『나는 지금 꽃이다』, 동시집 『바다는 왜 바다일까?』, 『칠판 볶음밥』 등을 냈다.
저자 소개
이장근 (글)
열네 살 때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 때 다시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로 오 년마다 다른 중학교에 입학한다. 교사가 되어서는 전입이라 해야 하지만, 나는 입학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중학생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들을 닮아 가는 부분도 많다. 나는 십 대를 닮는 것이 좋다. 십 대는 서툴게 그려졌지만 자꾸 생각나는 그림 같다. 나 또한 그런 그림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런 시집을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