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까짓것, 청춘인데 뭔들!”
나를 이루는 것, 나를 나답게 하는 것
『까짓것』은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이 더 많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시집이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대학 입시와 공부에 관심을 가지길 원하지만 청소년들에게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모습을 말하고,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자신의 사랑을 노래하기를 원한다.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시선이 아닌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바로 ‘나’를 찾는 것이다. 시인은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59편의 시에 담았다. 입시라는 테두리 너머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녹록하지 않은 ‘오늘’을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가운데 특유의 발랄함을 가득 담고 있다. 이정록 시인의 『까짓것』은 ‘창비청소년시선’ 아홉 번째 권이다.
“단단한 무릎으로 파도를 맞이하라.”
이정록 시인이 보내는 청춘 응원가
어른들에게 청소년은 항상 ‘학습하는 자’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까짓것』에서 청소년들은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 걱정과 관심이 더 많다. 어른과 아이들의 소통은 그렇게 어긋난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그들의 잣대를 들이대 문제아로 규정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아프고 시리다.
『까짓것』은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이정록 시인의 청소년시집이다. 시인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른들의 시선으로 청소년을 평가하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꼬집는다. 나아가 33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뒹굴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어른들의 편견과 선입견에 놓인 청소년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 가정 문제로 방황하는 청소년들, 사랑하고 이별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시집 곳곳에 담았다. 청소년 스스로 그들 내면의 목소리를 듣길 바라고, 주변을 걷어 내어 자신의 본 모습을 찾길 바라는 시인의 응원이 함께 한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요, 언제나 미리 말했잖아요.”
어른들에게 온몸으로 던지는 아이들의 진솔한 목소리
“왜 말하지 않았니?”라고 묻는 부모에게 아이는 자신이 수많은 언어로 말해 왔음을 강변한다(「미리 말하랬잖아」, 10~11쪽). 어른들은 아이들의 몸의 대화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생활은 단지 기록되어야만 할 뿐이다(「생활기록부」, 12쪽). 어른들은 꿈이 깨질까 봐 멈칫거리는 아이들을 문제아로 바라본다. 문제아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에서 아이들은 문제아가 아니지만 문제아로 자라기 시작한다(「문제아」, 30쪽).
실외 조회 시간에
사람이 키워서는 안 될
개 두 마리에 대해 들었다
그건 편견과 선입견이라고 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돈으로
편견과 선입견을 분양받았을까
교과서나 문제집에 껴들어 왔겠지
가슴과 머리에 개털이 날린다면
그건 분명 어른들이 버린 개가 쳐들어온 거다
― 「쏠림」 부분(14쪽)
끝까지 지키고 버텨야 할 것을
둥글게 말아 꼭 품고 있다.
부레가 꺼져서 얼굴을 덮는다.
오금이 저린지 다리를 꼰다.
날개로는 담요를 만들어서 덮는다.
― 「번데기」 부분(19쪽)
에그 답이 없어! 문제덩어리 수학책이
잠꼬대 가득한 사물함에 갇힌다
줄을 선 잠꼬대들이 빈 식판으로
쏟아지는 잠을 받들고 있다
이대로 쭉 가는 게 진로라고 한다
아무래도 대학 입학은
침대나 잠꼬대가 좋겠다
― 「잠꼬대」 부분(18~19쪽)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시선은 편견과 선입견일 뿐이다. 아이들은 단지 끝까지 지키고 버텨야 할 것들 때문에 자신들의 날개로 덮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원하는 진로, 대학 입학은 잠꼬대와 같다. 아이들은 날개 한두 쌍 꺼내기 위해 꿈틀거리고(「벌레」, 34쪽), 부서질 채비를 마치고 어디든 날아가고자 한다(「플라타너스나무 아래에서」, 41쪽). 아이들은 그저 누군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바란다(「이름을 불러 줄 때까지」, 84~85쪽). 이 시집에서는 이렇게 오늘날 청소년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까짓것, 청춘인데 뭔들!”
주먹으로 눈물 쓱 훔치는 아이들의 이야기
엄마와 아빠가 나 때문에 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고갤 떨구지 않는다(「인형 장례식」, 58~59쪽). 아무런 대책 없이 아버지가 떠나갔어도 “까짓것”이라는 입버릇과 같은 말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까짓것」, 62~63쪽). 때로는 주근깨 많은 얼굴이 별 볼 일 많은 신비한 얼굴이 되는 경험도 해보고(「별 볼 일 많아졌지」, 82~83쪽), 파도 소리 울먹이듯 울어도 본다(「속울음」, 76~77쪽). 텅 빈 머리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공터」, 92쪽),가슴우리에 사랑을 가득 채운다(「가슴우리」, 103쪽). 누군가의 울음을 나의 울음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서로가 함께 팔짱을 끼며 서로를 비추는 작은 불빛이 된다. 그렇게 아이들의 초록빛 청춘은 점점 여물고 스스로 성장한다.
쪽지 글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운다. 여동생도 운다. 냉장고도 운다.
까짓것, 이라고 말하려다가 설거지하고
헛기침 날리며 피시방으로 알바 간다.
까짓것, 돈은 내가 번다.
까짓것, 가장을 해보기로 한다.
― 「까짓것」 부분(62~63쪽)
걸음을 멈추고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라.
울음은 힘이 세서 너를 쓰러뜨릴 수도 있단다.
마음의 귀를 부풀려서
또렷한 문장으로 울음을 번역해라.
뚝! 울음을 멈추라고, 다그치지 마라.
네 맘 다 안다고, 거짓 손수건을 내밀지 마라.
먹장구름으로는 작은 강줄기도 막을 수 없단다.
바다에 닿은 강 언덕처럼, 단단한 무릎으로 파도를 맞이하라.
― 「누군가 울면서 너를 바라볼 때」 부분(104~105쪽)
어둠이 놀라서 달아나지 않을 만큼만
네가 너무 환해서 다른 이가 어두워지지 않을 만큼만
작은 빛이 되자 네가 네 어둠을 찾을 수 있을 만큼만
달맞이꽃이 움츠러들지 않을 만큼만
고무래나 대빗자루가 벌떡 일어나 도깨비가 되지 않을 만큼만
박쥐가 놀라서 동굴로 돌아가지 않을 만큼만
조그만 불빛일수록 둥글게 출렁거리지
빛 자리가 자꾸 흔들리는 까닭은 꺼지지 않기 위해서지
빛기둥을 타고 올라갈 수는 없지
높고 밝은 곳만으로 밟고 올라서지 말자
내 팔짱을 낀 사람이 헛발을 내딛지 않을 만큼만
서로의 얼굴과 어깨가 든든하게 보일 만큼만
누군가와 함께하면 조금 넓어질 뿐 높아지지는 않지
― 「작은 램프」 부분(106~107쪽)
▶ 시인의 말
스물두 살, 처음 교단에 섰을 때에 아이들은 연둣빛이었다. 나는 하양, 빨강, 파랑, 노랑 분필로 봄과 여름을 노래했다. 삼십 년 하고도 삼 년째다. 아이들은 여전히 연둣빛이다. 분필도 똑같은 색깔이다. 하지만 칠판 가득 판서를 하고 목청을 돋우다 보면 분필이며 손가락이 새까맣게 탄다. 이 시집은 그 세월을 나와 함께한 토막 분필과 몽당연필에 대한 반성문이다. 내 절망과 아이들의 초록빛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 저자 소개
이정록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동네의 잔 주먹을 피해 조기 입학했으나, 더 많은 떼 주먹이 기다리고 있었다. 꼴찌에 외톨이였다. 하지만 하굣길에는 아이들이 상냥해졌다. 내 책가방에 몰래 잔돌을 넣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그 잔돌을 모아 추녀 밑에 깔았다. “큰애 덕분에 큰비가 와도 마당이 파이지 않겠네.” 어머니는 혼내지 않으셨다.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스승의 날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원망의 글짓기로 입선을 했다. 국어 선생님이 고마워서 매일 국어사전을 쓰다듬었을 뿐인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미술을 하고 싶었으나 냉철한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됐다. 고등학교 입학만도 과분한 축복이었다. 상과, 문과, 이과를 옮겨 다녔다. 어쩌다가 학급 글짓기 대표 선수로 뽑혀서 내키지 않는 글쓰기를 일삼았다. 공장에 다니는 누님한테서 만해 한용운 시집을 선물받았다. 사랑스러운 ‘님’이란 말에 빠져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열아홉 번의 낙선 끝에 1989년 『대전일보』,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의자』,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산문집 『시인의 서랍』, 어린이책 『똥방패』, 『대단한 단추들』, 『지구의 맛』 등을 냈다. 윤동주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저자 소개
이정록 (글)
196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지런히 시와 이야기를 쓰고 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 2013년 윤동주문학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