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을 찍을 때까지

창비청소년시선 18

박일환
출간일
3/20/2019
페이지
104
판형
145*210
ISBN
9791189228378
가격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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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괜찮아, 지금은 잠시 외로워도”



나만의 고지를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만렙을 찍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 교사로서 청소년들 곁을 지켰던 박일환 시인의 청소년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다. 그저 고통에 신음하는 청소년들의 소리가 담겨 있을 뿐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답을 강요하는 학교, 마음처럼 쉽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 때론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가족 등 청소년들은 다양한 문제로 상처받는다. 시인은 그런 청소년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 섣부른 도움을 주려거나 힘내라는 응원을 하는 대신 함께 주저앉아 안아 주거나 울어 줄 뿐이다.박일환 시인은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결국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마음이라는 시인만의 처방을 담은 이 시집을 청소년들에게 내민다.



 



 



 



청소년시집 『만렙을 찍을 때까지』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유리로 만든 배”(「삐딱선」, 29쪽)에 올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려야 할지도 모른 채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태로 한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와중에도 늘 오답만 하는 자신이 퇴화해 버릴까 봐 두렵고,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이 밉다. 더구나 그런 자신의 존재가 엄마·아빠한테 ‘혹’이나 ‘짐’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만렙을 찍을 때까지』에 담긴 시 62편에는 상처받고 아팠던 청소년들의 속마음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오랜 시간 교사로서 청소년들 곁을 지켰던 박일환 시인은 청소년들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를 이 시집에 담고 싶었다.청소년들은 시인의 바람대로 “이런 것도 시가 되나!” 혹은 “시를 이렇게 써도 되나?” 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시들에 공감할 것이다.



 



 



“기어코 만렙을 찍을 때까지!”



자기만의 고지를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들의 속마음



청소년들은 세상이 아직 익숙하지 않기에 서툴고, 번번이 기대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백두산보다 높은 / 내 성적!”(「희망 사항」, 22쪽)을 간절히 꿈꾸는 것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니라 바로 청소년 자신이다. “성적표를 받는 순간 / 그 자리에서 푹 꺼져 내”(「싱크홀을 만나다」, 43쪽)릴 만큼 힘든 것도 청소년 자신이다. 어른들은 자꾸 그 사실을 잊는다. 네가 공부를 못해서 자신들이 가장 괴로운 것인 양 청소년들을 몰아세운다. 더구나 그 시험이 “내가 올라가면 네가 내려오고 / 네가 올라가면 내가 내려오”는 하나도 즐겁지 않은 시험(「시소 타기」, 20쪽)인데도 말이다.




축구장에서 골문을 향해 공을 차면 항상 빗나가고



(아뿔싸!)



시험 볼 때 아리송한 문제를 만나면 항상 엉뚱한 답을 고르고



(맙소사!)



어제는 딴생각하다 현관 유리창을 들이받았지.



(젠장!)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말



누군 몰라서 못 하나.



― 「어쩌면」 부분(28쪽)




청소년들은 결국 자기만의 목표를 세워 ‘만렙’을 달성하기로 결심한다. 그 목표는 게임 레벨을 최고점으로 올리거나 시험지 뒷장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되기도 한다. 어른들은 또다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말”을 하겠지만 시인은 다시 묻는다. “뜻한 바를 이룬 성취감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도 / 나는 바야흐로 용맹정진 중이”(「만렙」, 34~35쪽)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들의 정진을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돈과 명예는 필요 없다오.”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웃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시



이 시집의 3부에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시들이 있다. ‘살색’이라는 말이 ‘살구색’으로 바뀌는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시 「살구색의 탄생」(48쪽)은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주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돈과 명예를 좇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 이웃이 나와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장차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또 다른 길을 보여 줄 것이다.




인도의 겔라우르 마을에 살던 가난한 농부 만지히의 젊은 아내가 남편에게 점심 도시락을 가져다주려다 돌산에서 넘어져 크게 다쳤어. 병원에 가려면 험한 돌산을 넘거나 빙 돌아서 가야 했지. 아내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숨졌고, 슬픔에 빠진 만지히는 망치와 정을 들고 나섰어. 돌산을 깨서 길을 만들겠노라는 집념을 마을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지. 그러거나 말거나 만지히의 망치질은 쉬지 않았어. 20년쯤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어. 그렇게 해서 22년 만인 1982년에 드디어 높이 90미터 높이의 돌산을 깎아 길이 100미터, 폭 9미터의 길이 생겼어. 돌산을 돌아가던 72킬로미터의 길이 5킬로미터로 줄어들었지.



 



정부에서 상을 주려고 하자, 만지히는 이렇게 말했어.



“나에게 돈과 명예는 필요 없다오. 아픈 사람이 빨리 병원에 가고 아이들이 편안히 학교에 다니면 그걸로 된 거요.”



― 「현대판 우공(愚公)」 부분(60~61쪽)




 



“그냥…… 안아 주고 싶어요.”



주저앉아 함께 울어 줄 친구 같은 시



울고 싶은 사람이나 넘어져 울고 있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무엇일까. 시인은 넘어진 청소년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는다. 섣부른 도움을 주려거나 힘내라는 응원을 하는 대신 함께 주저앉아 안아 주거나 울어 줄 뿐이다. “안아 주고 싶다는 말이 있어 / 세상이 덜 춥고”(「안아 주고 싶다는 말」, 66쪽) 덜 외로울 것임을 알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친구 앞에서 울어 버렸다.



노래방에서 반주만 틀어 놓고 울어 버렸다.



 



함께 울어 주는 친구가 있어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아무도 안 보는 노래방이 있어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어 좋았다.



― 「울어 버렸다」 전문(68쪽)





달팽이가 더듬이를 내밀듯



나도 마음속 안테나를 세워 본다.



괜찮아, 지금은 잠시 외로워도 괜찮아.



어디선가 들려올 목소리에 기대 본다.



 



나와 같은 외톨이가 어딘가에 또 있을 거야.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혼자서 생각에 잠긴 나를 위해 하느님이



걱정 마,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을 거야.



― 「달팽이처럼」 부분(82~83쪽)




박일환 시인은 청소년들이 ‘마음속 안테나’로 내보내는 신호에 이렇게 응답한다. 지금은 잠시 외로워도 괜찮다고, 네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 시집은 청소년들이 자기만의 ‘만렙’을 달성할 수 있을 때까지 기꺼이 그들을 안아 주고 주저앉아 함께 울어 줄 것이다.



 



 



추천사



이 시집에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다. 그저 고통에 신음하는 청소년들의 소리가 담겨 있을 뿐이다. 그 이후 시인이 하는 행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안아 주거나 함께 울어 주는 친구가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방식은 이렇다. 울고 있는 청소년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넘어진 청소년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주저앉아 울어 주는 것이라는 것. 그 옛날 나와 내 친구들에게 필요했던 것도 아마 우리와 함께 울어 주는 어른이 아니었을까.



-신지영(작가·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저는 이런 것도 시가 되나, 시를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시는 무엇보다 자유롭게 열린 공간을 좋아하거든요. 상상력을 좁은 울타리에 가둬 두면 얼마나 답답할까를 생각해 보세요.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도 제 시를 자유롭게, 읽고 싶은 대로 읽어 주면 좋겠습니다. 재미없으면 건너뛰고 다른 시를 읽어도 되고요. 이제 이 시들은 제 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의 것이니 마음껏 갖고 놀며 즐기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시 세상에 굴러다니는 시들을 주우러 가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를 찾아 나선 독자 여러분과 어깨나 머리를 부딪치면 “어이쿠,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자 소개: 박일환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 공을 잘 차는 친구들도 부러웠다. 내게 아무런 재능도 주지 않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교과서 밖에도 시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무작정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를 쓰고 싶어 국문과에 들어갔으나 타고난 글재주가 없어 절망하는 날들을 보내다 졸업 후 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래도 시를 포기하지 못한 채 혼자 낑낑대며 붙들고 있다 보니 시인을 꿈꾼 지 20년 만에 등단이란 걸 하게 됐다.



1997년에 시인이 되어 『덮지 못한 출석부』, 『등 뒤의 시간』 등 몇 권의 시집과 청소년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 청소년소설 『바다로 간 별들』을 냈고,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 등의 책을 썼다. 지금은 30년 동안 이어 오던 교사 생활을 접고 다양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저자 소개

박일환 (글)

1992년 전태일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을 받고 1997년에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시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시집 『푸른 삼각뿔』, 『끊어진 현』, 『지는 싸움』, 『등 뒤의 시간』, 동시집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청소년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 『만렙을 찍을 때까지』, 장편소설 『바다로 간 별들』을 냈다. 30년 동안 국어교사 생활을 하면서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 교육산문집 『나는 바보 선생입니다』와 교육시집 『덮지 못한 출석부』 등을 썼고,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과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위대하고 아름다운 십 대 이야기』를 펴냈다.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관심이 커서 『국어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미친 국어사전』, 『국어사전 혼내는 책』, 『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 등을 썼고, 퇴직 후에도 집필과 국어사전 탐방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