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사건은 매번 학교에서 일어난다.”
빛과 어둠, 그 사이에 숨은 꽃씨 하나를 찾아 가는 청소년들의 성장 일기
감각적인 언어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온 김현서 시인이 청소년시집 『탐정동아리 사건일지』를출간하였다. 1996년 『현대시사상』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2007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시와 동시를 함께 쓰고 있다. 『탐정동아리 사건일지』는 시인의 첫 청소년시집으로, 시집 전체를 한 편의 성장 서사로 엮는 방식을 활용하였다. 시인은 57편의 시를 촘촘하게 엮어 ‘태블릿 피시 도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마치 추리 소설처럼 담아내었다.시인은 아이들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일상과 고민, 그 속에 감춰 둔 속마음을 드러낸다. 이 시집은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이자 ‘창비청소년시선’ 스물네 번째 권이다.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 김현서 시인의 청소년시집
『탐정동아리 사건일지』는 연작시 「탐정 일지」를 중심으로 시집 전체가 한 편의 성장 서사로 엮여 있다. 교실에서 일어난 태블릿 피시 도난 사건을 시작으로 가족, 학교, 우리 사회 등이 얽혀 벌어지는 일들을 명섭, 박진철과 오진철, 혁수, 규진 등을 등장시켜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그려 낸다. ‘사건을 키우는 건 집이다’(1부), ‘사건은 매번 학교에서 일어난다’(2부), ‘한통속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3부), ‘사건 전담 꼴통들의 반란’(4부)의 1~4부 제목 역시 이 시집만의 특색을 잘 보여 준다. 시집을 읽는 동안 우리는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을 때 같이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재미에 빠지는 한편 우리가 진짜로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이 시집은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범인은 누구일까?”
숨 막히는 집과 학교, 그 속에서 사건이 발생하다
시집에 등장하는 명섭, 혁수, 박진철과 오진철, 규진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하지만 규율에 얽매여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가정은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기는커녕 왠지 불편하고, 부모와는 매번 갈등과 불화를 겪는다.아빠는 ‘나’의 소중한 꿈을 헛꿈이라며 무시하고 엄마는 매일 “커터 칼이 되어 / 나를 깎는다 / 깎고 또 깎아내린다”(「잔소리의 끝」, 17쪽). 학교는 또 어떤가.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역시 마음껏 뛰놀며 미래의 꿈을 펼쳐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모두를 경쟁으로 내몰며, 오히려 아이들의 꿈을 옭죄는 억압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그러니 학교에 가는 걸음은 무겁고 교복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처럼 집과 학교 어디에서도 쉴 수 없는 아이들에게 어느 날 태블릿 피시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평소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피우던 혁수가 범인으로 지목된다.
실장! 태블릿이 없어졌어. 어떡해?
실장은 당황하지 않고
규진이보고 한 번 더 찾아보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 가방 속에 잘못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각자 가방이나 사물함도 확인해 보라고 했다
없었다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CCTV를 돌려 보았다
비슷한 시간에 두 명이
교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영상이 잡혔다
한 명은 실장
또 한 명은 혁수
실장은 선생님 심부름 때문에 갔다는데
혁수는 왜 들어갔을까?
혁수가 들어갔다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5 3초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시간인데
반 친구들의 싸늘한 눈초리가 한곳으로 쏠렸다
―「범인은 누구일까?」 부분(66~67쪽)
“아무래도 우리가 나서야겠어!”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나가는 한 편의 추리 소설, 「탐정 일지」 연작시
이 시집의 절정이라 할 연작시 「탐정 일지」는 정밀한 서사 방식으로 짜여 있어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태블릿 피시 도난 사건 발생 후 범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못 긴장감이 돈다.
조용조용 살금살금 뒷문으로 들어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맨 앞자리
창가 쪽에 있는 규진이 자리로 간다
고양이 걸음으로 최대한 몸을 낮추고
규진이 가방을 열고 태블릿을 꺼내
다시 혁수 자리로 가서 꽁꽁 감춰 놓고
휘리릭 몸을 돌려 아닌 척
주위를 살핀 뒤
실장 자리에 가서 학생증을 들고
드르륵
뒷문으로 나오기까지
3분 10초
다시 뛰다시피 재연해 보아도
1분 40초
일을 저지르기에는 택도 없는
53초
―「탐정 일지 –범행 동선을 따라가다」 부분(76~77쪽)
탐정동아리 친구들이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 우리를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청소년들이 순진하고 연약한 존재이며 욕을 하면 “새로 산 흰 운동화를 신고 / 진흙탕을 밟은 기분”(「욕을 했더니」, 57쪽)이 드는 청결한 존재라는 점이 잘 그려진다. 공부를 잘하면 모범생이고 공부를 못하면 문제아로 예단하는 어른들의 잣대를 부러뜨리고, 꿈을 앗아간 학교와 어른들을 향해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는 아이들의 입을 빌려 기성세대의 반성을 요구하는 시인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우리 반 박진철은 공부를 잘한다
일등을 놓쳐 본 적이 없다
(…)
사람들은 박진철이
인성이 좋을 거라고 말한다
친구 사이도 좋을 거라고 말한다
욕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선생님 말씀도 잘 들을 거라고 말한다
박진철과 얘기해 본 적도 없으면서
우리 반 오진철은 공부를 못한다
꼴찌를 놓쳐 본 적이 없다
(…)
사람들은 오진철이
인성이 나쁠 거라고 말한다
친구 사이도 나쁠 거라고 말한다
욕도 잘할 거라고 말한다
선생님께 뻑하면 대들 거라고 말한다
오진철과 얘기해 본 적도 없으면서
―「우리 반 진철이와 진철이」 부분(44~45쪽)
“시간이 부지런히 나를 키우는 동안 난 뭘 했을까?”
하얀 나비 한 마리를 품은 우리들의 성장 일기
탐정동아리의 활약으로 진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지만 어른들은 한통속이 되어 사건의 진실을 감춰 버린다. 학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도 굴러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 역시 그 과정에서 남몰래 일탈을 하던 친구의 속내를 알게 된다(「도둑질」, 98~99쪽). 모두가 상처를 안은 채 산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들은 상대를 미워하는 대신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통제된 시간을 견딘다. 어느새 졸업을 앞둔 주인공들은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본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들이 써 내려간 ‘탐정 일지’가 곧 성장 일지였던 셈이다.
이제 곧 졸업이다
허구한 날 쥐어 터지고 반성문 쓰다 어느새 졸업이다
시간이 가니 졸업은 하는구나
시간이 부지런히 나를 키우는 동안 난 뭘 했을까
―「졸업을 앞두니」 부분(112~113쪽)
시인은 시를 쓰는 내내 “아이들의 손짓, 발짓, 몸짓, 표정 들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 해도 그들의 속내까지 속속들이 짚어 내기란 쉽지 않기에 섣불리 알은체했던 것들이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삶을 누려야 할 시기에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 안에서 조마조마하며 눈치만 살피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이 시집을 읽고서 따듯한 위로를 받고, 저마다 어두운 땅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희망의 꽃씨 하나씩 가슴속에 품기를 바란다.
시인의 말
시를 쓰는 내내 아이들이 밤마다 소리 없이 다가와 내 잠을 깨워 놓았다. 혼자서 때론 여럿이 몰려와 함께 밤을 새웠다. 내 방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쿠키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쿠키보다 라면을 더 좋아했다. 편의점에 앉아 라면을 먹으며 아이들의 손짓, 발짓, 몸짓, 표정 들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이들이 보낸 시그널 중 일부는 알겠고 일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끊임없는 생각의 오류 속에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혹여 내가 섣불리 알은체했던 것들이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추천의 말
김현서 시인의 『탐정동아리 사건일지』는 시집 전체를 한 편의 성장 서사로 엮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탐정 일지」 연작시들은 화자를 행동하는 인물과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으로 구분하여 어린 시절 사랑과 보호의 존재였던 부모가 왜 통제의 존재로 돌변했는지, 어른들은 왜 더는 존경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는지, 왜 그들은 심각한 도난 사건마저 은폐했는지 등 사건의 안팎을 두루 살핀다. 태블릿 피시 도난은 더 큰 범죄에 연루된 빙산의 일각일 뿐 이들이 도난당한 것은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더욱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세란(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김현서
학창 시절 유난히 전학이 잦았다. 전학을 할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아이들은 나를 식물도감에 나오는 희귀 식물처럼 요리조리 살폈다. 아이들의 쥐눈이콩 같은 눈빛을 볼 때마다 어디선가 고라니라도 나타나 나를 뜯어 먹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중고등학교 때 미술 시간을 좋아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주변을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책 읽는 습관도 생겼고, 시 비슷한 글도 긁적거리게 되었다.
1996년 시 전문지 『현대시사상』 가을 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시와 동시를 함께 쓰고 있다. 시집 『코르셋을 입은 거울』, 『나는 커서』, 동시집 『수탉 몬다의 여행』 등을 냈다. 한국안데르센상(동시 부문)을 받았다.
▶ ‘창비청소년시선’ 소개
‘창비청소년시선’은 전문 시인이 쓴 청소년시를 발굴하고 정선해 내는 본격 청소년시 시리즈이다. 이번에 출간된 배수연 시집 『가장 나다운 거짓말』과 김현서 시집 『탐정동아리 사건일지』까지 총 24권의 ‘창비청소년시선’이 나왔다. 11월에는 시인 김륭의 청소년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앞으로도 ‘창비청소년시선’은 청소년시의 다양한 폭과 깊이를 가늠하며 청소년들 곁을 지킬 조금은 위태롭고 조금은 삐딱한 노래들을 찾아 나갈 것이다.
저자 소개
김현서 (글)
앞뜰에는 늙은 대추나무와 황매화가 있고, 뒤뜰에는 빨간 딸기가 올망졸망 자라던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경기도로 이사했다. 아기 때의 기억은 아름답지만 학창 시절은 조금 달랐다. 어느 날은 배가 고팠고 어느 날은 잠깐 웃었고 어느 날은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 시절의 눈물과 웃음 그리고 좌충우돌 서울살이를 자양분 삼아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