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예언 문제집

청소년시선 32

함기석
출간일
12/18/2020
페이지
120
판형
145*210mm
ISBN
9791165700416
가격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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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수능예언문제집-상세750



 



청소년들의 어두운 현실을 애틋한 마음으로 품어 안는 시집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이후 한국 시단에서 유니크한 시인으로 손꼽히는 함기석 시인의 청소년시집 「수능 예언 문제집」이 출간되었다. 함기석 시인은 그동안 기발한 발상과 수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언어의 한계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험적인 시 세계를 선보였다. 첫 청소년시집인 「수능 예언 문제집」에서는 선명한 이미지와 평이한 어법으로 사막 같은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수면에 활짝 핀 연꽃의 아름다움”보다는 “어두운 바닥에서 연뿌리가 겪는 고통”(시인의 말)을 애틋한 마음으로 품어 안는 시편들이 뭉클한 공감을 자아낸다. 이 시집은 ‘창비청소년시선’ 서른두 번째 권이다.



 



‘입시 지옥’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



‘수능 예언 문제집’이라는 독특한 제목이 말해 주듯이 이 시집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모의고사 보는 날」) 같은 ‘입시 지옥’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청소년시를 쓰면서 어른으로서의 자책과 반성이 더 커졌다”(시인의 말)는 시인은 캄캄한 미로 속에 갇힌 채 허덕이는 청소년들의 삶 속으로 성큼 들어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자 한다.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냉철한 시선으로 직시하면서 “부표 같은 작은 책상에 묶여” ‘대학 입시’라는 “망망대해를 아슬아슬 떠다니는 중”(「영어 시간」)인 수험생들의 고단한 일상과 불안한 심리를 섬세한 필치로 보여 준다.




오전 8시, 마시면 배탈 설사 나는 흰 우유 같고



오전 9시, 시험지는 이상하고 커다란 글자의 늪 같고



오전 10시, 문장들은 끊어지지 않는 길고 매운 쫄면 같고



오전 11시, 아는 문제 하나 없어 텅 빈 운동장만 쳐다보고



아아 12시, 햇살은 선인장 가시처럼 살을 콕콕 찌르고



―「모의고사 보는 날」 부분




 



오늘날 청소년들의 초상은 어떤 모습일까? 시적 화자 ‘나’는 “정육점 식당 갈고리에 걸린/9등급 고깃덩어리 같”(「우울해서」)다고 자조하거나, “육체는 인간”이지만 “정신은 인공 기계”(「공각 기동대」)에 불과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압축되어 쪼그라드는/빈 우유 팩 같”은 ‘나’는 “밑으로/밑으로” 하염없이 “계속 침몰하는”(「엘리베이터」) 존재이며, “똑같은 계단을 똑같은 동작으로/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무기수 같”(「시베리아허스키」)은 ‘개’에 비유되기도 한다. 지평선 너머로 지는 노을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기는커녕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바들바들”(「턱걸이」) 떠는 자화상을 보기도 한다. 이렇듯 입시 지옥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은 황량한 ‘사막 위의 생’과 다름없다.



 




저녁 해가



지평선에 목을 걸고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들바들 떤다



 



다리를 오징어처럼 배배 꼬고



낑낑거리는 8등급 나처럼



―「턱걸이」 전문




 



입시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



그러나 ‘사막 위의 생’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이 절망과 좌절 속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막 안에 푸른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듯이 그들의 내면에는 “봄 햇살처럼 얌전하”(「물개 동물원」)고 선한 심성과 “시험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자”(「우울해서」)는 꿋꿋한 마음이 살아 숨 쉰다. ‘성적’과 ‘대입’이라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 끝없이 절망하고 불안해하지만 청소년다운 풋풋함과 발랄함으로 메마른 삶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물새처럼 날개를 펼”쳐 그들이 “상상하는 곳, 이 세상 끝까지”(「이상하고 신기한 버스」) 힘차게 날아오른다. 그리고 이제, “나의 미래 나의 운명을 스스로 앞서 찍는” “새로운 마침표”가 되어 당당히 “문장의 맨 앞에서 살”(「새로운 마침표」)기로 다짐한다.




그때 모래 속에서 19번 버스가 부르릉 솟아 나오더니



틀니 낀 기사 할머니가 커다랗게 소리친다



뭐 해? 오줌 다 쌌으면 타지 않고!



우리가 얼른 올라타자 버스는 물새처럼 날개를 펼치더니



호수 위를 신나고 빠르게 달린다



물결 따라 은빛 물고기들이 제트 스키처럼 쌩쌩 날고



차창으로 들이치는 물보라에 얼굴이 함빡 젖은 채



나는 기사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묻는다



할머니, 이 버스 어디까지 가요?



네가 상상하는 곳, 이 세상 끝까지!



―「이상하고 신기한 버스」 부분




 



기적을 부르는 슬픈 소원



‘세월호’를 소재로 한 4부의 시들은 한결같이 가슴을 저미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그해 사월의 차가운 검푸른 바닷속에서 “왜 아무도 우릴 데리러 안 오는 걸까?”(「떠오르지 않는 배」) 묻는 어린 영혼들의 가냘픈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살려 달라고, 잠긴 배 문을 쾅쾅 두드렸을 아이들”(「슬픈 거인」)의 멍든 주먹손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세월이 흘러도 썩지 않는 비통한 슬픔에 젖어 단 ‘5분간’만이라도 “기적이 일어났으면”(「참새 잠」) 바라는 시인의 애달픈 목소리가 먹먹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6년 전 봄, 그날의 참사를 되새기며 시인은 “죽은 나뭇가지 속 어린 싹들이/춥고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기를 간절히 빌며 해마다 돌아오는 사월을 “부활의 달”(「부활절」)이라 슬피 노래한다.




5분간,



밤낮이 바뀌고 하늘과 바다가 바뀌면



그 캄캄한 밤바다 밑에도 태양이 환히 빛나겠지



그럼 색색의 물고기가 되어 떠도는



너희를 다시 볼 수 있을까



 



5분간, 5분간



지상의 모든 바닷물이 흙으로 바뀌면



바다엔 너희 닮은 예쁜 꽃들이 생글생글 피어나겠지



그럼 꽃길마다 까불까불 뛰놀며 장난치는



너희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선생님의 슬픈 소원」 부분




 



우리가 상상하는 곳, 이 세상 끝까지



“수능 만점의 특수 임무”를 받고서 “끊임없이 입력-출력-검사를 반복해야 하는”(「공각 기동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꿈과 미래를 잃은 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시인은 “너무 절망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쯤에서 청소년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시인의 말처럼 “눈앞의 장밋빛 성공이 먼 미래의 꿈과 비전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눈앞의 먹구름 낀 암울한 성적표가 미래의 꿈과 희망을 좌절시키는 것도 아니”다. “오늘 밤 어둠이 깊을수록 내일 아침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 빛은 더욱 밝고 눈부시”리라는 시인의 마지막 말이 외롭고 쓸쓸한 사막에서 제 길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되리라 믿는다.




. 내 이름은 마침표



. 나는 언제나 문장 끝에 살았다



. 나는 언제나 글자들 뒤에서 조연처럼 살았다



. 나는 이제 나의 위치를 스스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 나는 이제 문장의 맨 앞에서 살겠다



(중략)



. 나는 이제 과거의 내가 아니다



. 나는 과거의 마침표를 끝마치는 새로운 마침표



. 나의 미래 나의 운명을 스스로 앞서 찍는



. 내 이름은 도전하는 마침표



. 이제 이것이 나다



―「새로운 마침표」 부분




 



 



시인의 말



 이 책에 등장하는 두호, 도경, 현이, 영교 들은 우리 청소년들의 초상이다.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혹시 지금 말 못 할 슬픔에 빠져 있다면 너무 절망하지 말라고. 눈앞의 장밋빛 성공이 먼 미래의 꿈과 비전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눈앞의 먹구름 낀 암울한 성적표가 미래의 꿈과 희망을 좌절시키는 것도 아니니까. 세상엔 그 반대 사례가 너무도 많으니까. 오늘 밤 어둠이 깊을수록 내일 아침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 빛은 더욱 밝고 눈부시니까.



 



 



추천의 말



『수능 예언 문제집』은 수험생의 삶이 단지 암울함과 좌절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마치 사막 안에 푸른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듯이 그들의 내면에는 저마다의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끝없이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고독해하지만, 또한 그곳에서 어떻게든 숨구멍을 열어 치열하게 숨 쉬고 번민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며 인간다운 호흡을 해 보려 애쓴다.



- 김제곤(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함기석 (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 눈에 띄어 반강제로 미술반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 때는 축구에 미쳐 해가 질 때까지 운동장을 휘젓고 다녔다. 야자 시간엔 몰래 교실을 빠져나와 학교 주변의 과수원들을 순방하며 사과를 따 먹었다. 결국엔 걸려서 정학을 받고 날마다 긴 반성문을 썼는데 내 글을 본 공범 친구들은 감동적이라며 낄낄거렸다. 2학년 때부터 연마해 온 연애편지 대필 실력을 이런 데 써먹을 줄이야. 그때의 편지 쓰기와 반성문 쓰기가 훗날 시 쓰기로 이어진 것 같다. 친구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한양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여 4학년이던 1992년에 『작가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국어 선생은 달팽이 』, 『착란의 돌』, 『뽈랑 공원』, 『오렌지 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동시집 『숫자 벌레』, 『아무래도 수상해』, 동화 『상상력 학교』, 『코도둑 비밀탐정대』, 『황금비 수학 동화』, 『크로노스 수학탐험대』등을 출간했다. 눈높이아동문학상, 박인환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