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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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발표

11/1/2023

제3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발표


■ 수상작 없음

■ 심사평

제3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에는 총 91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당도한 응모 작들에서 소설을 향한 진중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성장소설’이 라는 공모명에 대한 응모자들의 기대와 부담감이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되어 소설적 미학보다는 한 개인의 성장기, 혹은 일대기를 소설적 구성 없이 나열하거나, 성장이라는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의 교훈 조로 써 내려간 작품이 더러 눈에 띄었다.

심사위원들은 ‘성장소설’ 심사 기준 또한 기본적으로는 좋은 소설을 발굴하는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동의하였다. 그러면서도 문학의 근원적 주제인 ‘성장’의 의미를 새로운 시대 와 감각에 맞게 계속 재탐색하고, 소설의 원형이라 할 ‘성장소설’의 새로운 길을 꾸준히 모색 해 가고자 하는 본 상의 취지에 대해서도 확인하였다. 특히 본심에 올라온 총 네 편의 소설 「하늬마음휴양병원」, 「똥통」, 「가시거리」, 「솔라의 정원」을 두고 오랜 시간 토론에 임했다.

「하늬마음휴양병원」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정신병동에 입원한 인물들 사이에서 희미하 게 발생하는 이어짐의 순간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울한 내용과는 달리 활달한 전개 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매력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무난하고 평이하게 그렸으며, 비슷한 소재를 다룬 대중문화 작품들과 차별점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 커다란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등장인물의 사연을 에피소드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 함으로써 구심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도 한계로 지적되었다. 중간중간 제시된 ‘요양일보’ 기사 와 해당 기자의 역할이 끝까지 모호하게 느껴졌다는 점에서 신문 기사를 삽입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똥통」은 눈부신 성장의 이면을 가리키는 응모작이었다. 소설은 마치 ‘똥통’처럼 헤어 나오 기 어려운 깊은 가난, 폭력, 혐오의 수렁 속에 갇힌 화자가 어떻게 끝내 살아 냈는지를 고백 과 수기의 형태로 서술한다. 으레 독자는 주인공이 견뎌야 했던 현실이 지독할수록 그가 누릴 성장의 대가가 더 눈부시리라 기대하곤 한다. 그러나 소설은 이런 식의 봉합을 기각한다. 현 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 까닭에서다. 대신 소설은, 고통스러운 삶의 기억과 대면하고 이것을 자기 서사로 다시 쓰고자 하는 용기를 내는 순간으로부터 성장을 포착하려 한다. 이러한 의의 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온전히 지지하기에는 소설적 완성도의 측면에서 약점이 적지 않았 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소개하는 단조로운 구성, 그러 면서도 마치 자유 연상처럼 그때그때 사건과 인물을 떠올리는 난삽한 서술은 화자의 진정성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일부 있었으나 그만큼의 형식적 빈틈을 초래했다.

「솔라의 정원」은 오갈 데 없는 십 대 아이들을 위한 ‘그룹홈’을 꾸리고 아이들에게 아낌없 이 사랑을 베푸는 ‘솔라 할머니’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타투를 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할머니의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으며, 각각의 인물들이 품은 사연 또한 가슴 뭉클하게 느껴졌다. 흠잡을 데 없는 문장을 보여 준 동시에 소설의 전개 또한 자연스러워 본심에 올라

온 작품들 중 가장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뜻 지지하기 어려웠던 것은 기시감이 드는 캐릭터와 다소 밋밋해 보이는 갈등 구조, 단선적인 인물 관계 등이 한계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안정적인 서사 구조를 갖췄지만, 당선작 으로 내세울 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인물들의 대화에서 각각의 욕망과 캐릭터가 좀 더 생생하게 부각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가시거리」는 본심 과정에서 가장 많은 논의가 오갔던 문제작이다. 「가시거리」는 디지털 성 범죄라는 무거운 주제에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는 태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노래 가사와 인터넷 게시물이라는 대중문화의 현재적 코드를 작품 곳곳에 적절하게 버무리면서도, 언제라도 뚜벅뚜벅 걸어 나와 우리 곁의 청소년들 사이로 섞여 들어 갈 듯한 인물들을 구현해 낸 솜씨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아마도 이러한 점이 독자 심 사단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중요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세밀한 현실 감각을 통 해 탄탄한 토대를 다지고, 그 위에서 설득력 있는 서사를 찬찬히 빚어 가는 과정을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분명 아쉬움이 남을 만하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우려가 있었다. 문학의 엄숙주 의와 고답적인 태도는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우리 소설 문학이 지켜 온 전통적 가치와 서사 적 핍진성을 쉽게 외면할 수는 없기에 심사위원단은 본심 과정에서 「가시거리」를 두고 머뭇거 리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긴 논의 끝에 심사위원단은 올해 수상작을 내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각각의 작품이 보여 준 매력과 미덕이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약점들 또한 간과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 이 모였다. 응모자들과 독자 심사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마음이 무겁지만, 이 상의 취지 에 부합하는 더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 한 해 쉬어 가는 것 또한 의미가 있겠다는 데 전원 합의했다. ‘성장’은 외부에서 부과된 과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고 있는 내밀한 자기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더 자기답게 일구어 가는 게 날로 중요해지는 가운데, 성장과 성장소설의 의미와 과제를 더 핍진하게 탐색한 작품을 만나고 싶은 기대감을 품어 본다. 뜻한 바를 이루 는 것도 성장이지만 실패와 아픔 또한 성장의 과정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으며, 다음 을 기약하기로 하겠다.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강수환 김선산 김유담 한영인(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