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성장’의 의미를 새롭게 탐색하고 청소년 독자의 성장을 추동하고자 ㈜창비교육에서 제정한 ‘성장소설상’의 제4회 공모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상패가 주어지며, 수상작은 ㈜창비교육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 수상자 및 수상작
- 김성미, 『오늘의 의뢰』(대상)
■ 수상자 약력
김성미 1985년 울산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초등 교육을, 대학원에서 사서 교육을 공부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읽고 쓰는 것,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보물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수업 에세이 『수업에 생각을 더하다』(공저)를 썼습니다.
■ 심사 위원
김민령(소설가·문학 평론가), 김선산(국어 교사), 정은숙(소설가), 최배은(문학 평론가)
■ 심사평
창비교육 성장소설상이 제정된 지 4년째다. 여기에서 성장소설은 십 대의 발달 이상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청소년소설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새롭게 의미화한 개념이다. ‘성장’이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결코 완료될 수 없는 삶의 한 과정이라고 볼 때 성장소설은 훨씬 더 깊고 풍부하게 자라고 변화하고 자기 세계를 발견해 나가는 인물을 그려 내리라 기대되었다. 길지 않은 역사지만 그간 성장소설상 수상작들은 그 이름에 값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올해는 여기에 덧붙여 ‘청소년 독자’를 좀 더 강조하기로 했다. 삶의 끝나지 않는 과정으로서 성장이 제시되었다면 이제 줌을 당겨 청소년기에 초점을 맞춰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 볼 만했다.
청소년 독자는 누구인가.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존재, 다 크지 못했지만 더는 천진난만하지 않은 존재. 그리하여 보호와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끊임없이 탈주를 목표로 하는 존재. 청소년은 이제 어른들이 골라 주는 책을 고분고분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온한 태도로 한계에 부딪히고 넘어서며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는 것은 청소년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잃지 않을 것. 청소년 독자에게 청소년소설이 필요한 이유다. 어쩌면 성인 독자들이 청소년소설 장르를 즐겨 읽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청소년 독자를 강조한 이번 공모 요강 덕분인지 올해는 예년에 비해 과거를 애틋하게 그리는 회고담이나 현실성이 소거된 SF 또는 판타지가 줄었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청소년 문제에 천착한 작품이 늘었다. 네 명의 심사위원이 본심에 올린 응모작 모두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시의성을 지닌 작품이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부자 은행』, 『선에 대한 질문』, 『보편적이지 않은 ‘서연’』, 『오늘의 의뢰』 네 편이었다.
『부자 은행』은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왕래가 없던 할아버지 집에 맡겨진 열여섯 살 금동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주가 또래를 대상으로 소액 사채업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며 돈의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을 그려 보이는데 최근 사회 문제로 대두된 청소년 도박도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내건 일명 ‘독립 운동 오 계명’과 경제적 자립을 꿈꾸는 동주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과정을 기대하게 되는 전반부에 비해, 뒤로 갈수록 자극적인 설정으로 서사를 급하게 마무리하려 한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청소년에게 ‘돈’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그려 내려고 했는지 분명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선에 대한 질문』은 주인으로부터 학대당한 개와 삶을 포기하려는 노부부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십 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동물과 노인, 환자 등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을 중심에 두고 돌봄을 통해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호감이 간다. 교차 시점으로 진행되는 서사가 역동적이고 긴장감 있게 전개되어 이야기 읽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용서와 화해를 결론에 맞춰 두고 너무 쉽고 간단하게 도달하려고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등장인물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일은 정다울지 몰라도 충분한 서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독자를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보편적이지 않은 ‘서연’』은 매사에 주눅 들어 있고 어디에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중학생 서연이가 느닷없이 나타난 어린 동생을 돌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빈곤과 방임의 이중고를 겪는 서연에 대한 심리 묘사가 치밀하고 그런 와중에 스스로 자라며 단단한 내면을 가꿔 나가는 청소년 인물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영 케어러’ 문제의 난감함을 직시하고 있으며 문장과 장면 서술 등이 탄탄해 문학성과 완성도를 고루 갖춘 소설이다. 다만 중심 서사가 단조롭다는 점, 결국 시작과 끝에서 서연이를 둘러싼 상황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사의 한계를 드러냈다.
『오늘의 의뢰』는 최근 대중문화에서 중요하게 대두된 사적 제재와 폭력의 문제를 내세운다. 서사의 한 축에서는 ‘해결 사이트’라는 익명 대화방에서 거래되는 개인적인 해코지의 연쇄 반응을 그려 내고, 다른 한 축에서는 중학생 해민이와 도경이 수상쩍은 사건들을 접하고 문제의 근원을 추적하는 모습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 인물이 각자의 고민과 비밀을 풀어놓으며 우정과 로맨스를 쌓아 나가는 모습도 따뜻하게 그려진다. 익명의 개인이 복수를 대행시킨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속도감 있는 서사가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며 이야기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문제 해결에 뛰어든 중학생 인물들이 저마다 지닌 약점에도 불구하고 밝고 건강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다만 중심인물이 중학생들이다 보니 추리의 난도가 높지 않아 긴장이 쉽게 풀려 버리며 후반부의 짜임새가 느슨해진다는 인상을 준다.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서연’』과 『오늘의 의뢰』 두 편을 두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였다. 두 작품의 성격이 워낙 달라서 문학적 완성도와 서사의 재미, 안정감과 청소년소설다운 패기 등 장단점을 몽땅 저울에 올려 봐도 눈금이 어느 한쪽으로 쉽게 기울지 않았다. 마지막에 결론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독자 심사단의 의견 덕분이었다. 본심작 네 편 모두 비슷비슷한 별점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오늘의 의뢰』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았다. 심사단은 “비대면이 익숙해진 현재의 청소년들이 인터넷 서버상으로 서로의 말 못 할 고민들, 시기 어린 질투들을 털어놓고 해결해 가는 과정과,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못난 시선을 보냈던 십 대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미숙한 청소년들이 서로 도움을 받아 올바르게 생각하고 실제적인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면모가 인상적”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어떤 ‘상부상조’는 몹시 나쁘다.”라는 근사한 심사평도 있었다.
제4회 성장소설상 수상작으로 『오늘의 의뢰』를 선정한다. 이 작품은 청소년 인물들이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너끈히 짊어지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선다는 점에서 청소년소설의 미덕을 충분히 살렸다. 곤란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짓눌리지 않고 세상의 밝은 곳을 응시하려는 자세도 미덥다. 수상자에게 진심 어린 박수와 축하를 보낸다. 수상하지 못한 다른 응모작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세계들을 하나씩 품고 있어 문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와 계속 나아가시라는 응원을 보낸다.
- 김민령(대표 집필) 김선산 정은숙 최배은
■ 수상 소감
자신의 장점을 써 보라고 하면 의외로 쉽게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커 갈수록 장점을 보이는 것을 주저합니다. ‘모르겠어요’, ‘나는 잘하는 게 없어요’에 그치지 않고 ‘나는 내가 싫어요’라는 말까지 듣게 되면 덜컥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이럴 때는 아이들에게 제 이야기를 해 주곤 합니다.
‘선생님도 내가 못난 것 같아서 싫을 때가 있었어.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6단까지밖에 못 외워서 집에도 못 가고 울면서 외웠는데 그땐 내가 바보 같았어.’
신기하게도 저의 부끄러운 고백이 아이들에게는 적잖은 위로가 되는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도 그럴 때가 있었어요?’ 하고 기운을 차리곤 합니다.
좋은 이야기라는 것은 결국 빠져들어 공감할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의뢰』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나’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때때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저 자신에 대한 기억이 불쑥불쑥 떠올랐고 모든 것을 부끄러워하던 그 아이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오늘의 의뢰』가 성장소설상을 수상하게 되어 놀랍고도 기쁜 마음입니다. 학생과 교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줄 것 같은 창비교육이기에 수상이 더 뜻깊습니다. 『오늘의 의뢰』가 책장이 잘 넘어가는 소설이 되었으면, 다 읽은 뒤 선물처럼 뭔가를 남기는 작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어 주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