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말릴 수 없는 ‘이야기 통제사’
최정화가 들려주는 지구의 미래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팜비치」를 시작으로 세상에 필요한 메시지를 부지런히 전해 온 이야기꾼 최정화. 환경 잡지사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근무한 바 있는 그는 소설가로 데뷔한 후에도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를 출간하거나 다양한 환경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기후 위기와 관련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 왔다.
『날씨 통제사』에는 작가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기후 위기와 인류의 미래’를 다룬 단편이 다수 실려 있다. 게다가 SF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십분 활용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신선하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소설집의 제목 ‘날씨 통제사’는 단편 「벙커가 없는 자들」 속 인물들의 직업이다. 기후 변화에 위협을 느낀 인류가 결국 대기를 직접 조절하는 지경까지 이른다는 설정의 이 작품은, 인류의 오만함을 꼬집으면서 지금 우리가 사소한 농담처럼 말하는 기후 변화가 ‘거대한 재앙의 전조’라 경고한다.
「그레이트 퍼시픽 데드 바디 패치」는 ‘거대한 재앙의 전조’를 미스터리 서스펜스로 펼친 작품이다. 제목 ‘그레이트 퍼시픽 데드 바디 패치(Great Pacific Dead Body Patch)’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해류를 타고 모여 만들어진 태평양의 실재 섬 ‘그레이트 퍼시픽 가비지 패치(Great Pacific Garbage Patch)’에서 차용한 허구의 섬이다. 소설에는 인간의 일상생활을 돕는 일회용 로봇들이 살인을 저지른 뒤 시체를 이 섬에 유기하고, 그 사람을 대신해 살아간다는 섬뜩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일회용 쓰레기 문제를 풍자한 것으로 편리함, 효율에 취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인류의 모습을 블랙 코미디로 표현했다.
「비지터」는 더 나아가 인류가 파멸된 이후의 세계를 상상한 작품이다. 소설 속에는 인데바르족이라는 비인간 종족이 지구를 지배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인간을 생산하고 개조한다. 인류가 생태계 전반에 행해 온 약탈과 착취를 과감히 미러링한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행하며 지구를 점유해 왔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드는
최정화 이야기의 힘
작가는 “소설을 박차고 나가야 하는 때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는데, 지극히 내성적인 내게는 소설이야말로 현실에 뛰어드는 가장 적극적인 통로라는 걸 깨달았다.”며 “써야 하는 이야기를 잘 쓰고 싶다. 잘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작가의 관심은 자연과 생태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분명 존재하지만 외면당하기 일쑤인 어두운 곳까지로 그 영역을 뻗어나간다.
「쑤안의 블라우스」는 봉제 공장 사장인 ‘나’가 베트남 이주 노동자 쑤안을 만나면서 경험한 나흘간의 기묘한 체험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은 봉제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가 받는 열악한 대우와 생존의 고단함 등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면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이야기의 몰입감과 주제 의식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고양이 눈」은 일제 강점기 토막민이 자본가에게 가게를 빼앗긴 후 느끼는 무력함,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저항의 의지를 치밀한 심리 묘사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동시에 최근 서울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제기된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비유적으로 서사화해 현재적 관심사를 환기한다.
「라디오를 좋아해?」는 성소수자인 ‘나’가 흔히 이단이라고 불리는 소수 종교를 믿는 직장 동료 우희를 만나면서 느끼는 심리 변화를 담았다. 정당한 이유 없이 색안경을 끼고 상대를 바라보는 ‘나’를 통해 소설은 당신이 생각하는 편견은 무엇인지 되묻는다. 더불어 우희의 마지막 대사에서 독자들은 통쾌한 동시에 뜨끔해지면서, 편견과 혐오에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이외에도 이번 소설집에는 믿음의 결여에서 오는 관계의 문제를 다룬 「거실 장 한가운데」, 인간 인식의 허점을 지적한 「부케를 발견했다」가 수록되어 있다. 일상 속의 균열과 파동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최정화의 장기가 여실히 발휘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
최정화 작가는 『날씨 통제사』 속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가치’와 ‘원칙’을 강조한다. 상관들이 떠나 버린 날씨 통제 센터를 지키고 있는 ‘나’(「벙커가 없는 자들」)는 “내게는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었다.” “그 가치라는 것이 단지 과거의 특정 시점에 유용한 도덕률에 불과하”거나 “그게 내가 잠시나마 누린 사치라고 해도 좋았다.”라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에게 가게를 빼앗긴 ‘나’(「고양이 눈」)는 거듭되는 수난 속에서도 “내게는 해선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 같은 게 있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서로 다른 개성을 뽐내지만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여덟 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목소리 앞에서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단호하게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더불어 그 가치를 지켜 내는 마음이 얼마나 고귀하고 어렵고 드문지 굳고 단정하게 말한다.
『날씨 통제사』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을 덮으며 독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적어도 하나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특권성을 주장하며 자연을 착취하는 인간, 자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효율과 편리함 때문에 미래를 배제하는 인간, 서로 배척하고 혐오하는 인간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저자 소개
최정화 (글)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에 단편 소설 「팜비치」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모든 것을 제자리에』,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 경장편 소설 『메모리 익스체인지』, 장편 소설 『없는 사람』, 『흰 도시 이야기』, 에세이 『책상 생활자의 요가』, 『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등을 썼다. 201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