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멍은 해녀

창비청소년시선28

허유미
출간일
4/13/2020
페이지
144
판형
145*210mm
ISBN
9791165700034
가격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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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청소년시선28_상세페이지750

 

제주의 푸른빛이 가득 담긴 청소년시집

2015년 『제주작가』 신인상과 2019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허유미 시인의 청소년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가 출간되었다. 허유미 시인은 제주 모슬포에서 나고 자란 제주 토박이이다. 『우리 어멍은 해녀』는 시인의 첫 시집으로, 해녀의 딸로 살아온 경험을 더듬어 해녀들의 가파른 삶과 제주 섬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감수성이 돋보이는 섬세한 언어로 오롯이 담아내었다.또한 제주 출신인 현기영 소설가, 이종형 시인, 김성라 작가가 각각 추천사, 발문, 일러스트를 맡아 제주의 푸른빛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이 시집은 ‘창비청소년시선’ 스물여덟 번째 권으로,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20년도 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작이다.

  

해녀 엄마와 섬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의 날들

이 시집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눈물 젖은 몸”(「눈물 한 방울」, 104쪽)과 “손가락 마디마디 파도 자국 주름진 손”(「해녀 딸」, 105쪽)으로 제주 섬을 지키며 바다를 일구어 온 해녀들에게 바치는 노래이다.해녀의 딸로 태어나 성장해 오는 동안 시인은 ‘해녀 엄마’의 삶을 애잔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들을 제 몸속에 차곡차곡 새겨 넣었을 터이다. 시인은 그렇게 “외롭고 눈물 많은 밤들”(「가출」, 109쪽)을 견뎌 온 해녀 엄마들의 삶을 시로 되살려 낸다.

바다는 해녀의

거대한 눈물 한 방울이라서

파도는 눈물 한 방울의

흔들거리는 몸짓이어서

눈물 한 방울이 섬을 꼭 안고 있어서

우리는 해 질 녘이면

눈물 젖은 몸으로

가족의 이마를 만져 주어서

―「눈물 한 방울」 부분(104쪽)

또한 시인은 섬 아이들의 고단한 삶도 살핀다.시집 속 청소년들은 “탭 사서 인강 들으려고” 횟집에서 “제주산 꽃”이라 불리며 아르바이트를 하고(「제주산 꽃」, 18쪽), “친구들이 보충 수업을 받는 동안” 부두에서 얼음을 나르기도 한다(「철렁」, 52쪽). 하지만 “등대처럼 서로를 비춰 주”(「자매」, 14쪽)는 가족이 있기에 “웃음은 크고 눈물은 환하”(「한 칸」, 48쪽)게 피어오른다. 끝내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살아가는 섬 소년·소녀들은 그렇게 “한 그루 나무처럼 혼자 크는 법”(「비자림」, 68쪽)을 터득하면서 몸도 마음도 성숙해 간다.

아직 어깨가 다 벌어지지 않고

키도 다 자라지 않았지만

독서실 알바를 하면 공과금은 낼 수 있고

주말마다 옆집 형 따라 마트 배달 일을 하면

엄마를 꽁꽁 얼게 만드는 대출 이자를 해결할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아빠가 되기로 마음먹은 날 알았다

우리 가족 성(城)은 나다

―「제주성에서 다짐」 부분(56~57쪽)

 

제주의 슬픈 어제와 안타까운 오늘을 마주하다

시인은 제주와 역사와 현재에 대해서도 따끔한 목소리를 낸다. 제주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주 4․3 사건’이다.시인은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 진상 규명도 역사적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올바른 이름을 얻지 못한 채 ‘사건’으로만 불리는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피맺힌 역사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편,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로 몸살을 앓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점점 사라져 가는 제주의 정체성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하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백비에

 

이름 없이

갓난이로 불리던

아기의 식은 볼

 

그 아기를 안고 죽은

어미의 탱탱 불은 젖

―「백비 앞에서」 부분(100~101쪽)

길마다 코스 이름 번호 붙더니

전세 버스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는

트럭도 막아서고

지팡이도 막아서고

우는 아기 막아선 줄도 모르고

널어놓은 깨를 툭툭 치며

즐거워한다

―「올레길은 돌아서」 부분(75쪽)

 

제주어 · 詩 지도로 특별함을 더한 시집

시집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제주어’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두 편의 시(「아직도 철없다」, 90쪽 / 「갈점뱅이」, 94쪽)는 표준어로 쓰인 시와 제주 방언을 고스란히 살린 시를 나란히 실었다.서로 비교해 가면서 읽다 보면 낯설었던 말의 의미가 서서히 다가오면서 제주 방언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맛보게 된다. 더불어 시집의 앞에는 시집에 나오는 제주의 지명·장소를 표시한 ‘詩 지도’를 수록하였다.시인이 들려주는 제주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를 걸으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제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아직도 철없다

엄마 손 잡고 학교 가야 되겠니

 

그러고 싶다 멸치잡이 배만 들어오면

엄마 얼굴 삼 일에 한 번 보는 것 같아서

―「아직도 철없다」 부분(90~91쪽)

니는 아적도 철엇다

어멍 손 심엉 학교 가사크냐

 

겅허고 싶다 멜베만 들어오민

어멍  사을에  번 보는 거 닮다

―「아적도 철엇다」 부분(92~93쪽)

 

심장 씻기는 바닷바람을 맞게 해 줄 시들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가슴 시린 사연조차 끝내 그 고통을 이겨 내는 꿋꿋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가 하면, 때로는 위트와 유머가 스며들어 은근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시인은 “짜고, 달고, 쓴 맛”이 나는 바닷물 같은 시로 청소년들을 만나 따뜻한 위로와 감동,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시인의 말대로 청소년들이 이번 시집으로 “심장이 씻기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 싱싱하고 푸른 꿈을 키워 나가기를 기대한다.

그거 아니 큰 배든 작은 배든

바다 위에서는 모두 흔들린단다

흔들려야 가라앉지 않고

파도를 거슬러 대양으로 갈 수 있단다

―「제주항」 부분(54~55쪽)

 

 

시인의 말

바닷물은 짜고, 달고, 쓴 맛이 납니다. 이 시집도 그 바닷물 같기를 바랐습니다. 눈물 같은 짠맛과 마음에 가장 오래 남는 쓴맛 그리고 짠맛과 쓴맛 뒤 쾌감을 불러오는 단맛 나는 시들로 청소년 여러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처음 바다에 갔을 때 “바다를 보진 못하지만 심장이 바람에 씻기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시가 그런 바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시집을 읽고 심장이 씻기는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추천의 말

이 시집은 제주 바다의 싱싱한 짙푸름과 알싸한 갯냄새로 가득하다. 시 한 편 한 편이 제주 바다의 물고기인 양 아름답고 싱싱하다. “파도 자국 주름 진 손”으로 푸른 바다에 몸 맡겨 이리 궁글 저리 궁글 살아가는 해녀 엄마와 “등대처럼 서로를 비”추는 그 가족 이야기도 싱그럽고 아기자기하다. 가난한 삶이지만, “웃음은 크고 눈물은 환하고” 분노는 굳세다. 청소년의 감수성을 담아낸 언어가 감상에 흐르지 않고, 위트와 유머의 굵고 싱싱한 날것들이어서 좋다.

-현기영(소설가)

 

이 시집에는 해녀의 딸로 성장해 오는 동안 저절로 몸에 새겨진 체험적 진술은 물론, 가족과 어릴 적 동무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다양한 제주 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시들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살아온 이야기인 동시에 살아갈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인이 들려줄 엄마와 딸의 대화들, 저 모슬포 바다 이야기가 자못 기대된다.

-이종형(시인)

저자 소개

허유미 (글)

제주 바닷가 마을 모슬포에서 태어났다. 수평선, 물너울, 등대, 섬은 나의 첫 친구들이다. 말문이 트였을 때 엄마라는 말보다 바다라는 말을 먼저 했다. 물질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는 파란 요람, 파란 집, 파란 놀이터였다.

청소년 시절 유난히 말수가 적어 부모님이 걱정하셨다. 말수가 적은 대신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고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풍경이나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시절부터 시집을 읽는 시간이 많았다. 책꽂이에 시집이 많아지면서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결혼과 육아로 꿈을 잊고 살다 뒤늦게 등단을 했다. 요즘은 다른 일보다 시 쓰기에 골몰 중이다. 『우리 어멍은 해녀』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