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계를 넘어선 상상력으로 밀어붙인
‘진짜 나’를 찾게 할 기기묘묘한 이야기
― 각자의 큐브에 갇힌 이들에게 건네는,
SF와 리얼리즘의 결합이 빚어낸 탈주의 상상력
이 책은 투명한 정육면체 큐브에 갇혀 ‘채집’된 청소년이 겪은 롤러코스터 같은 이야기로, 부족한 자아 인식과 진로 탐색에 스민 불안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의 의미를 탐색케 하는 장편 SF 청소년소설이다. 파격적이고 개성 강한 상상력과 서사로 주목받아온 보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창비교육 성장소설’ 시리즈의 열세 번째 책이다.
이야기는 연우가 학교에서 투명한 막에 갇히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서사 초반부터 눈에 그려질 듯 묘사되는 동적 장면들이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도대체 누가, 왜 채집했고, 큐브의 통제 시스템에 의한 심리‧신체‧물리적 ‘리셋’과 이에 따라 연우가 다다를 결말이 어떠할지 독자들의 호기심은 증폭된다. 이런 동력을 바탕으로 작품은 갑자기 1년 뒤 현실로 돌려보내진 연우의 ‘미래 살기’와 주변인들과의 교류, 특히 친구 ‘해고니’와의 애정 관계와 ‘복제된 자아’의 출현을 흥미진진하게 담아가며 큐브는 우리가 기댔거나 혹은 속박된 일종의 관념이거나 체제였음을 확인케 한다.
바닷가 소도시를 배경으로 시종일관 감각적 대화와 청량한 에피소드로 활기 있게 전개되는 이 작품은 연우와 해고니의 쫄깃한 연애담이기도 하다. 그런데 둘의 갈등과 해소는 각자가 큐브에 갇혀 분투하는 과정과 연결되며, 이는 독자에게 우리는 저마다 어떤 큐브에 갇혀 ‘진짜 나’를 놓치고 있는지 질문케 한다. 현실을 여실하게 비추는 SF의 역설적 속성이 제대로 발휘된 이 작품은 리얼리즘과 SF가 만나 이룰 수 있는 한 정점을, 청소년을 포함한 다양한 독자에게 선사한다.
● 진화하는 SF와 리얼리즘의 갱신, 이들의 결합이 낳은 새로운 청소년문학
SF에는 현실의 이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리얼리즘적 속성이 있다. 특히 핍진한 현실성만으로 문학적 전망을 세우기 어려운 어린이청소년문학에서 SF는 현실을 우회하거나 돌파할 틈을 열어주며, 그래서 최근 이 분야에서 가장 핫한 장르가 되었다. 『큐브』는 그러한 SF의 효용성을 적극 반영한다. 아울러 오늘날 SF는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해 의미를 부여하는 관습적 문법에서 벗어나 현실에 스민 다양한 이슈에 대한 사고실험을 자극하는 일종의 서사 방식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이제 더는 ‘로봇, 우주, 미래’가 SF의 필수 소재나 배경이 아니다. 『큐브』는 그러한 SF의 진화 위에 서 있기도 하다.
“당신은 채집되었습니다”로 각인된 서사 초반부는 SF의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연우는 정육면체에 갇혀 의식을 통제받으며 지구 궤도를 돌다가 1년 뒤 현실로 돌려보내진다. 그래서 주어진 대로만 살면 문제 없던 고3생이 아닌, 달라진 삶을 꾸려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러자 ‘자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관건이 된다. 삶의 다양한 선택지 중 잘 맞는 것을 고르려면 그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연우는 불충분한 자아 인식과 정체성 혼란, 진로 고민에 따른 불안에 점차 휩싸인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연우에게 학교라는 안전한 체제를 벗어난 삶은 버겁기 십상이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이후 서사는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러면서도 ‘복제된 자아’와의 소통, 또 다른 큐브의 출현과 활용, ‘항상성 시스템’ 유지, 이에 따른 물리적 ‘리셋 혹은 리플레이스’ 등 SF의 상상력이 현실 이야기에 끊임없이 틈입한다. 이는 청소년들의 작품 속 현실을 SF의 상상력으로 뒤흔들어 더 실험적이면서도 현실성 있는 탐색을 하도록 이끄는 전략이다. 그래서 이는 리얼리즘의 갱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고유성은 여기에서 시작되며, 이를 통해 재미와 흥미, 새로움과 개성, 현실적 주제의식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 연애담과 성장담의 결합이 빚어낸 독특한 매력과 즐거움
연우는 오래전부터 친구 해고니를 좋아했다. 그래서 큐브 속 생존과 이탈에 해고니에 대한 마음이 동력으로 작동했으며, 돌아온 현실에선 이미 사회인이 된 해고니와의 접점 형성이 연우에게 갈등 요인이 된다. 자신의 욕망과 삶의 지향에 대한 별다른 인식 없이 되는대로, 혹은 범생이처럼만 살아온 연우는 남들처럼 다른 도시로 이주해 대학에 가려 했고, 그 계획에 해고니도 포함시켜 놨었다. 하지만 프로 서퍼가 꿈인 해고니는 바다가 있는 고향에 남아 취직까지 했다. 서로를 아끼지만 대학을 갈지 말지, 고향을 떠날지 말지, 안 떠난다면 무얼 하며 살지 등 둘에게 남은 문제가 간단치 않고, 상대방 때문에 삶의 경로를 바꾸는 일에 대한 책임성이 고뇌하게 한다.
이런 까닭에 둘은 사귀기로 했다가 이내 친구가 되고, 그러다 다시 서로를 찾는 등 단속적 관계를 이어간다. 환희와 실망을 오가는 가운데 확확 바뀌는 둘의 마음과 언어가 독자의 마음을 찌릿하게 자극하며 쫄깃한 재미를 안긴다. 그러다 연우는 자신의 채집 경험을, 해고니는 바다에서 일어났던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를 꺼내놓게 되면서 서로를 품으며 성장해간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삶의 본질적 문제와 연결돼 자기 탐색을 추동하고, 이를 통해 성장해가는 두 아이의 모습이 독자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하다.
● ‘복제된 자아’ 등 다양한 인물과의 입체적 교류로 형상화된 주제의식
연우가 채집됐다가 1년 뒤 미래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그사이 문어 낚싯배 선장이 돼 있고, 해고니는 고졸 취업자가 돼 있으며, 친구들은 대학생이나 재수생이 돼 있다. 그리고 자신을 채집의 “사은품”이라 설명하는 ‘복제된 자아’까지 소지하게 된다. 큐브에서 풀려났지만 휴대폰 고리로 달린 젤리 곰에 특정 ‘장치’가 입력돼 현실에서도 연우를 관리하는데, 거기에 연우의 ‘또 다른 자아’도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우는 복제된 자아와 함께 가족과 친구들의 욕망과 선택에 대해 차츰 알게 된다. 엄마와 “잘 먹고 잘살려고” 돈 잘 버는 원양어선 선원이 됐었다는 아버지, 프로 서퍼가 되고자 서핑 숍 직원이 된 해고니, 언제든 서핑을 하고 싶어 직장을 관두고 이사 와 서핑 숍을 차린 진호 형, 부모님 식당을 물려받고자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하고 푸드트럭 운영도 하는 나루, 사회적 지위 획득을 목적으로 대입을 치열하게 준비하는 윤찬이…. 이들은 자기 인식과 목표 아래 길을 선택했고, 갈팡질팡하더라도 나름의 삶을 꾸려간다. 이들 덕에 연우는 특정 학과 진학부터 낚싯배 선장, 민박집 주인, 군청 공무원, 자동차 정비 기능사 등 여러 진로를 떠올려본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자신조차 자기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젤리 곰 장치의 ‘항상성 시스템’ 때문에 늘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연우는 그렇지 않은 복제된 자아와 때론 대립적으로, 때론 포용적으로 소통하며 자기 내면을 탐색해간다. 이렇듯 서사에 녹아든 자아 내-외부와의 입체적 교류와 탐색이 독자에게 풍성한 간접 체험을 안기며 주제 형상화에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 ‘표준 강박’에서 벗어난 인물과 배경으로 담은 폭넓은 시선의 가치
많은 청소년소설의 인물과 배경이 수도권 중심으로 설정돼 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도시에 살며 학교를 다니고 대입에 몰두한다. 대학에 가더라도 수도권 소재 대학에 간다. 은연중에 이들의 삶이 우리의 지향 혹은 표준으로 삼아지고 있고, 강박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뭇 다르다.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항구와 해수욕장, 해안도로를 주로 오가며, 영화라도 보려면 대도시로 나가야 하고, 대입은 고향을 떠나는 문제와 직결되며, 지역 내 진로를 상수로 고려한다. 이들의 삶을 문학화한 건 우리가 보편이나 표준으로 삼고 있는 삶에 대한 인식을 빗겨나 한결 폭넓은 시선을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삶을 통해 상대적으로 좁은 물리적‧심리적 영역 안에서 지내는 청소년들의 수동성이나 안온함, 혹은 그래서 느낄 갑갑함과 한계 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현실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장르 전략뿐 아니라 대상을 포착하고 형상화한 시선과 태도에서도 이 작품은 우리 청소년문학의 다양화에 기여할 작품이라 하겠다.
저자 소개
보린(보린) (글)
동화‧청소년소설 작가. 2009년 장편동화 『뿔치』로 ‘푸른문학상 미래의작가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옛이야기 기반의 개성 강한 판타지를 주로 써 왔고, 늘 상식의 이면을 파고드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주목받아 왔다.